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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시편119편(2부, 고난 속의 신뢰 (헤~테트, 33~72절))

하나님, 어떻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돌아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주일이 되게 하소서. 내게 맡겨주신 찬양의 자리를 최선을 다해 지킬 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찬양입니다.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7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1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54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2부는 1부의 선언과 결단이 실제 삶의 압력 앞에서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보여줍니다. 나그네의 고독이 기멜 연에서 처음 등장했다면, 이제 헤부터 테트까지 시인은 본격적으로 박해와 유혹과 조롱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인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헤 연 (33~40절) — 가르쳐 주소서, 깨닫게 하소서

헤 연은 연속된 간구로 가득합니다. "가르쳐 주소서"(33절), "깨닫게 하소서"(34절), "내 발걸음을 인도하소서"(35절). 여덟 절 안에 이렇게 많은 청원이 쏟아지는 것은 이 부분이 평온한 묵상이 아니라 절박한 기도임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말씀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다른 곳으로 기울어지는지를 압니다.

36절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히브리어 בֶּצַע (베차)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부당한 이익, 폭력으로 취하는 이득을 뜻합니다.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의 적만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서 말씀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마음이 끌리는 그 내면의 중력입니다. 존 칼빈은 이 연을 해설하며 "인간의 의지는 스스로 선한 방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이 마음 자체를 붙들어 주시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은혜론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 통찰입니다. 순종은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입니다.

바브 연 (41~48절) — 말씀이 나의 변론이 되다

바브 연에서 처음으로 대적의 존재가 구체화됩니다. 42절,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말이 있게 하소서." 시인은 말씀을 삶의 지침으로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 앞에서 말씀이 그의 변론이 되어 주기를 구합니다. F.F. 브루스는 이 구절의 배경으로 포로기 이후 유대 공동체 안에서 경건한 자들이 받은 사회적 조롱과 압력을 지목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약함과 어리석음의 표시로 여겨지던 환경입니다.

그 압력 앞에서 시인이 선택한 것은 반격이 아닙니다. 45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다닐 것이오며." 역설적입니다. 규범처럼 보이는 말씀 안에서 오히려 자유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것을 "율법의 자유"라고 표현했습니다. 말씀의 경계 안에 사는 것이 속박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공간이 된다는 신학적 역설입니다. 46절, "내가 왕들 앞에서도 주의 증거들을 말하고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비방자들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겠다는 담대함이, 말씀이 자신의 편임을 아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자인 연 (49~56절) — 고난 중의 노래

자인 연은 2부에서 가장 서정적인 부분입니다. 49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억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언약을 근거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고대 기도의 방식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를 "약속을 근거로 드리는 기도는 가장 강력한 기도"라고 표현했습니다.

54절이 이 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내가 나그네로 있는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1부 기멜 연에서 나그네로 자신을 규정했던 시인이, 이제 그 나그네살이 중에 말씀이 노래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고난 안에서 말씀이 노래로 변한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구절을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 즉 광야의 유랑과 포로의 경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노래였다는 공동체적 기억"과 연결하여 읽습니다.

헤트 연 (57~64절) — 내 분깃은 야훼시라

57절은 2부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선언 중 하나입니다. חֶלְקִי יְהוָה (헬키 야훼), "야훼가 나의 분깃이시라." חֵלֶק (헬레크)는 토지 분배에서 각 지파와 가문에게 돌아오는 몫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레위인에게 땅이 없는 대신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분깃이 된다는 민수기의 언어(18:20)를 시인이 개인적으로 전유(專有)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시인이 세상의 어떤 소유보다 하나님 자신을 최고의 유산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해설합니다. 물질도, 안전도, 명예도 아닌 하나님 자신이 내 몫이라는 선언은 박해와 궁핍 속에서 나올 때 더욱 빛납니다.

61절은 그 현실을 직시합니다. "악인들의 줄이 나를 얽어맸으나 나는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얽매임과 잊지 않음이 한 절 안에 공존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상황이 신앙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신앙이 상황을 해석한다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테트 연 (65~72절) —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2부의 마지막이자 절정입니다. 65절에서 시인은 "야훼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로 시작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감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67절이 놀랍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인은 고난이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고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고대 세계에서 고난이 신의 저주로 여겨지던 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며, "시인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점이 71절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히브리어 טוֹב (토브), '선하다·좋다·유익하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를 보시며 "좋았더라"고 하실 때 쓰인 바로 그 단어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난을 향해 그 단어를 씁니다. 고난이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선하다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 구절을 "성경에서 고난의 신학이 가장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표현된 구절 중 하나"라고 했고, F.F. 브루스는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에서 전개하는 신학과 같은 뿌리를 가진다고 분석합니다. 72절로 테트 연이 닫힙니다. "주의 율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더 좋으니이다." 고난을 통과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 고백은, 고난 이전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무게를 가집니다.


2부 전체를 한 흐름으로 보면, 헤 연에서 마음의 방향을 잡아달라는 간구로 시작하여, 바브에서 말씀이 나의 변론이 된다는 담대함을 얻고, 자인에서 고난 중의 노래를 발견하고, 헤트에서 하나님 자신이 나의 분깃이라는 선언에 이르고, 테트에서 고난이 유익이었다는 역설적 감사로 마무리됩니다. 내려가는 것 같지만 실은 깊어지는 여정입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이 질문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나를 얽어매고 있는 줄이 있다면, 그 안에서도 나의 말씀을 향한 방향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나온 고난을 돌아볼 때, 그것이 내게 유익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라는 선언이 오늘 나의 실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