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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시편119편(1부, 말씀향한 갈망 (알렙~달렛, 1~32)

청년시절 마음이 어렵고 힘들때 누군가 읽어보라고 했던 119편, 무슨 뜻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위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편을 계속 읽어오면서 기대가 되기도 했던 119편이다. 평일에는 긴 내용을 묵상하기 어려워서 휴일인 오늘 다시 시작한다. 시편119편은 답관체 형식인데 5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은 첫째 부분인 '말씀을 향한 갈망' (알렙 - 달렛, 1~32절)이다.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편 119편의 첫 32절은 단순한 서론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시 전체의 신학적 기초를 놓는 선언이자, 시인이 말씀 앞에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기 고백입니다. 네 개의 연(알렙·베트·기멜·달렛)이 각각 다른 각도에서 같은 주제를 조명합니다.

알렙 연 (1~8절) — 복 있는 자는 누구인가

시인은 첫 절을 "복 있는"이라는 선언으로 엽니다. 히브리어 אַשְׁרֵי (아쉬레이)는 시편 1편 1절과 동일한 단어로, 단수가 아닌 복수 강조형입니다. 직역하면 "오, 얼마나 복된가!"에 가깝습니다. 존 칼빈은 『시편 주석』에서 이 구절을 시편 1편의 의도적인 반향으로 읽으며, "시인은 말씀 안에 사는 삶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복임을 처음부터 선언한다"고 했습니다. 이 복은 감정적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존재의 충만함입니다.

그런데 알렙 연의 끝(8절)은 놀랍습니다. "주의 율례들을 지키리이다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그토록 장엄하게 시작한 선언이 간청으로 끝납니다. 매튜 헨리는 이것을 "자신의 결단이 하나님의 붙드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경건한 자의 겸손"으로 읽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말씀을 지킬 것이라 다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가능하려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셔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긴장이 119편 전체를 관통합니다.

베트 연 (9~16절) — 청년이 어떻게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9절의 질문은 매우 실존적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히브리어 נַעַר (나아르)는 단순히 나이 어린 사람이 아니라, 아직 삶의 방향이 굳어지지 않은 형성기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F.F. 브루스는 이 연이 잠언의 지혜 전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하며,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 도덕적 훈련의 외적 강요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설명합니다. 시인의 답은 간단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삼가는 것입니다.

11절,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는 이 연의 핵심입니다. צָפַן (차판), '숨겨두다·비축하다'는 뜻의 이 동사는 귀한 것을 안전한 곳에 간직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존 스토트는 이것을 "성경 암송의 신학적 근거"라고 표현했는데, 단순한 기억술이 아니라 말씀이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기멜 연 (17~24절) — 나그네의 간구

19절이 이 연의 열쇠입니다.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시인은 자신을 גֵּר (게르), 즉 이방 땅에 잠시 머무는 체류자로 규정합니다. 이스라엘 법에서 게르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취약한 존재였습니다. 톰 라이트는 이 이미지를 "시인이 세상에서 완전히 집에 있지 않다는 실존적 감각"으로 읽으며, 그 낯섦이 오히려 말씀을 더욱 간절하게 붙들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나그네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19절)라고 간청합니다.

이 연에서 눈에 띄는 것은 23절입니다. "고관들이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권력자들의 조롱 앞에서 시인은 반박도 도주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씀을 낮은 소리로 읊조립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장면을 "세상의 소음이 클수록 더 깊이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영적 훈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달렛 연 (25~32절) — 진토에서 일으키소서

1부의 마지막 연은 가장 솔직합니다. 25절,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עָפָר (아파르), 먼지·흙·진토. 창세기에서 인간이 빚어진 바로 그 재료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고백은 앞선 세 연의 결단과 갈망이 얼마나 현실의 무게 앞에서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칼빈은 이 연을 해설하며 "달렛은 결단이 아니라 탄식에서 시작하지만, 그 탄식이 진정한 신앙의 언어"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쓰러진 상태에서도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25절)라고 외칩니다. 기도의 방향이 바뀌지 않습니다. 2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이 슬픔으로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슬픔이 그를 무너뜨리고 있지만, 그 슬픔 한가운데서 말씀을 붙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32절은 1부 전체의 마무리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혀 주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רָחַב (라하브), '넓히다·확장하다'. 말씀을 향한 열정은 의지의 힘으로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넓혀 주실 때, 비로소 달려갈 수 있습니다. 1부는 이 고백으로 끝납니다. 결단이 아니라 은혜의 간구로.


1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습니다. 알렙에서 "복 있는 자"를 선언하고, 베트에서 그 복을 살아내려는 청년의 결단을 보여주고, 기멜에서 세상 속 나그네의 고독을 고백하고, 달렛에서 진토에 엎드린 영혼의 탄식으로 내려옵니다. 고상한 신학적 선언이 현실의 무게에 부딪히며 점점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오히려 더 깊은 신뢰로 이어집니다.

오늘 묵상하며 이 질문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지금 알렙처럼 선언하는 자리에 있습니까, 아니면 달렛처럼 진토에 붙은 자리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 어느 자리에 있든, 말씀을 향한 나의 방향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까? 마음을 넓혀 달라는 기도, 오늘 드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