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내 고백이 내 삶이 되게 하시고, 매일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편 113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성품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이끄는 찬양시입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대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에 불렸던 애굽 할렐(시편 113~118편)의 첫 번째 시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 만찬에서 부르셨던 찬송이기도 합니다(마태복음 26:30).
1. 찬양의 당위성과 범위 (1~3절)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성경적 근거와 해설
시인은 1절 한 구절에서만 찬양하라는 명령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히브리 문학에서 세 번의 반복은 최상급의 강조를 뜻합니다. 찬양의 대상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 성품, 영예를 총망라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분이 계시하신 구원의 역사와 성품 전체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석 및 역사·문화적 해설
- 여호와의 종들: 존 칼빈(John Calvin)과 신학자 앤더슨(Anderson)은 이들을 레위인이나 제사장 같은 직분자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고 해설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책임인 동시에, 천지를 지으신 분을 예배할 수 있는 피조물의 최고의 특권입니다.
- 찬양의 시공간적 범위: 2절의 이제부터 영원까지는 시간의 영원성을, 3절의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는 공간의 무한성을 나타냅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 구절이 이스라엘이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넘어 이방 땅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신약 시대 교회의 모습을 예표한다고 주석했습니다. 어떤 형편이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함이 없으시기에, 우리의 찬양 역시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항상 이어져야 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의 초월성과 가없는 위엄 (4~6절)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성경적 근거와 해설
5절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라는 질문은 이 시편의 핵심이자 반어법적 선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제국의 권력자들보다 높으시며, 인간의 지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우주(하늘)보다 높으신 초월자이십니다.
주석 및 역사·문화적 해설
- 스스로 낮추사: 성경 주석가들은 이 표현에 담긴 신비에 주목합니다. 히브리어 원어적 의미는 높은 곳에 좌정하신 분이 몸을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시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시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을 낮추시는(비하, Condescension) 은혜의 행동입니다.
- 역사적 배경과의 대조: 고대 근동의 이방 신화(바빌로니아, 애굽 등)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의 세상에 무관심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인간을 이용하는 폭군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온 우주 위에 계시는 지고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피조 세계의 작은 일 신음 소리 하나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세밀하게 살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 스스로 낮추심의 절정이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3. 비천한 자를 향한 구원과 반전의 은혜 (7~9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성경적 근거와 해설
하나님이 몸을 굽혀 살피시는 구체적인 대상이 등장합니다. 바로 진토(먼지 구덩이)에 누워 있는 가난한 자, 거름 무더기(오물 더미)에 앉아 있는 궁핍한 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단순히 위로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가장 높은 지도자인 방백들의 자리에 앉히시며 공동체의 중심 안으로 회복시키십니다.
주석 및 역사·문화적 해설
-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이 구절이 인간의 비참한 영적 상태와 거기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보여준다고 해설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거름 무더기는 부정한 곳이자 극빈자나 나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살던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영적 파산 상태에 있을 때, 그 비참함 속에서 건져내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의 불임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거나 언약의 복에서 끊어졌다는 영적·사회적 수치와 사망 선고로 여겨졌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이 배경을 잘 보여줍니다. 시편 기자가 이 여인을 언급한 것은, 생명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의 조건이 완전히 끝난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생명과 기쁨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분임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뜻의 요약
이 시편을 통해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뜻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영혼을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쌓아야 할 것은 지식의 자랑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먼지 더미와 영적 죽음에서 건져내어 주신 은혜에 대한 겸손한 감격입니다. 주님의 높으심을 인정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높일 수 없으며, 주님이 낮은 자를 살피셨듯이 우리 또한 이웃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여호완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편이 처음과 끝에 선포하는 진정한 할렐루야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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